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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과 윤리(율법) 오늘날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불타는 신디 2014. 9. 2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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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과 윤리(율법) 오늘날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화동회, 2014. 4. 24, 최영태)

서론
   구원과 윤리의 관계는 무엇이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윤리는 삶의 길 또는 방법으로 성경에서 율법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먼저 구원과 윤리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성경윤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율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1. 구원과 윤리
   성경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을 크게 둘로 말한다면, 그것은 구원과 윤리 라고 할 것이다(딤후 3:15-17). ① 첫째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알고 믿어서 구원받고 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요 3:16; 롬 1:16,17 등).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고(요 10:10 등), 또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고 전하는 것이다. ② 다음에 성경이 요구하는 것은 예수님을 알고 믿어서 받은 구원의 복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고전 10:31; 마 25:14-30 등).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윤리이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전 10:31 등). 사람이 구원받기 전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었다. 그는 죄와 죽음의 지배 하에 있기 때문이다(롬 7장 등 참조).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다르다. 그는 새사람이 되었고(고후 5:17), 죄와 죽음의 지배에서 벗어났으며(롬 6장 등), 또한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살게 되었다(롬 8장 등). 그러므로 그는 그가 받은 구원의 은혜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책임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인데(마 6:33; 롬 12:1-2; 요 14:21 등 참조), 하나님의 뜻은 율법에 표현되어 있고, 율법의 핵심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출 20장; 마 22:34-40 등).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으며,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 곧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사는 것이다(요 4:24; 요 14:21-23; 롬 12:1-2 등). 그리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귀중히 여기고, 또 아끼고 돌보는 것이다(마 6:19 이하; 요 13:34,35 등 참조).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가? ① 먼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어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고 새사람이 되기 때문이다(롬 1:16-17; 요 3:16; 요 1:12-13; 고후 5:17 등). 사람은 먼저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하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롬 1-3장, 7장 참조). ②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요 15장, 롬 6-8장 등 참조). 이렇게 살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행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구원받은 신자가 해야 할 일이다.

2.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지켜야 한다면, 왜 지켜야 하는가?
   구원은 신앙에 의하여 가능하다(롬 1-4장 참조). 율법을 행함으로 가능하지 않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나, 인간은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롬 7장 참조). 그러면, 율법은 불필요한 것인가? 율법이 필요하다면, 무엇을 위해 어떤 의미에서 필요한가? 신앙과 율법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율법은 신앙을 요구하지 않는가? 율법은 지켜야 하나? 율법을 지킬 수 있는가? 율법은 왜 지켜야 하나? 율법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구원과 율법의 관계는 무엇인가? 구원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율법의 실천이 더 중요한가? 구원은 율법을 행함으로 가능한가? 아니면, 구원을 얻음으로 율법의 실천이 가능한가? 예수님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신다(마 5:17-20 등). 율법을 왜 지켜야 하는가?
   1) 율법은 원래 하나님의 의의 계시요 기준 이기 때문이다(롬 7:7-14). 따라서 율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율법은 다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뜻의 계시이기 때문이다(마 5:17-20).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신다(벧전 1:14-16 등 참조). 그리고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이다(롬 7:12,14; 2장; 마 22:34-40; 롬 13:8-10; 갈 5:13-15 등 참조). 이러한 의미에서의 율법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지키지 못한다(롬 3:20; 7장 등 참조). 형식적 의미의 율법은 인간이 어느 정도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거룩과 의와 사랑의 표현으로서의 율법은 인간의 타락한 성품으로는 지킬 수 없는 것이다(롬 7장 참조).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율법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엡 1:4 등).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원래의 뜻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엡 2:10; 딛 2:14; 벧전 2:9 등 참조)
   3) 우리가 율법(참된 의미의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더 큰 뜻을 이루기 때문이다. 곧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빌 2:12-18; 3장 등 참조).

3. 구약의 율법을 오늘날 그대로 다 지켜야 하는가?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마 5:17-20 등 참조).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그 율법을 어떻게 다 지킬 수 있는가?
   구약의 율법은 보통 도덕법(moral law), 의식법(ceremonial law), 시민법(civil law)으로 구분한다. 도덕법은 영원한 법으로서 항상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의식법은 제사법, 정결법 등으로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완전히 이루어졌으므로 오늘 우리가 그대로 지킬 필요가 없다(히 10:17-18). 그러나 그 정신은 거룩으로서 우리의 삶에서 지켜야 할 것이다. 시민법은 시민 생활에 관한 법들로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적용하기 위한 것으로, 오늘 우리의 시대에 그대로 지킬 수 없는 것들도 많다. 그러나 그 정신은 또한 의와 사랑으로서 오늘날에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것이다 (롬 12:1-2 등 참조).

4. 그러면 바울은 왜 율법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는가? (롬 10:4; 갈 5:1-4 등)
   1) 율법 조문 곧 형식적인 율법을 지키는 것은 진정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롬 2:28-29; 마 23:23 등). 진정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은 율법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다.
   2) 진정한 율법 곧 율법의 정신은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롬 7장 등). 율법은 죄를 깨닫게만 할 뿐 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롬 3:20). 그래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의 은혜와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롬 1-8장 참조). 그리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5. 그러면, 율법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1) 인간은 먼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죄 용서받고(죄에서 해방되고, 롬 1-5장),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롬 6장). 죄를 지은 인간은 죄의 지배하에 있어 선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롬 7장). 그리고 그 죄의 결과로 심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롬 1-2장). 예수님은 이것을 위해서 곧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해방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또한 부활하셨다. 그리고 신자들이 선을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주셨다.
    2) 예수를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삶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행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한다(롬 12:1-2 참조).
   3) 계속하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롬 6-8장).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 곧 선을 행할 수 있다(롬 8장, 12장).

6. 율법주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가?
   율법주의는 율법을 다 지킴으로 의롭다함과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곧 구원을 위해 율법을 의지하는 것이다(갈 2:16; 3:2,11; 5:4 등). 그러면 율법주의의 근본 문제는 무엇인가?(롬 2-3장 유대인들의 죄 등 참조)
1) 그들은 율법의 참 의미 곧 율법의 근본정신을 알지 못했다. 율법의 근본정신은 거룩, 의, 사랑이다(롬 7:12,14; 2장; 마 22:34-40; 롬 13:10; 갈 5:13 등 참조).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형식적, 피상적으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고, 참 믿음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참된 선행이 없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다는 증거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에서 나타난다.
2) 그들은 율법을 스스로의 힘으로 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율법의 참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며, 또한 인간의 무능 을 몰랐기 때문이다. 율법의 참 의미를 알면 우리는 우리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롬 7장 참조). 율법의 기준은 너무 높고 인간의 능력은 너무 부족하고 또한 죄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율법의 참 의미를 알 때 우리는 율법을 행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해서 가능한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롬 8장 등 참조).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기 힘으로 율법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그 이유는 율법을 형식적으로 피상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 율법을 바로 알았을 때 그는 율법을 행할 수 없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바울은 참 믿음을 통한 구원과 선행을 말했고, 야고보는 거짓 믿음에 의한 거짓 선행을 비판했다.

결론
1. 구원과 윤리는 성경의 2대 주제로서 우리의 설교에는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때로는 구원에 대해서 때로는 윤리에 대해서 별개로 설교할 수 있으나, 우리의 설교에는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구원만 설교하면,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른다. 결국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낙오자가 된다. 윤리만 설교하면, 율법주의자가 되어 결국은 좌절하거나 심판자가 된다.

2. 구원과 윤리의 관계는 먼저 구원이 이루어져야 윤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독교윤리는 구원받은 사람만이 실천 가능한 것이다. 기독교인의 윤리적 삶은 또한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3. 구약의 율법(윤리)을 오늘날 설교하기 위해서는
   1) 율법의 근본정신을 발견해야 한다.
   2) 이 율법이 오늘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전해야 한다.

   3)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필요함을 증거하고, 또한 이를 위해 하나님을 계속하여 믿고 의지하고 기도함이 필요함을 증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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