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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 예배에서 놓치고 있는 것
    에반젤리스틱 워십운동 2022. 11. 3.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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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했던 필자는 어느 순간 프로뮤지션이 되고 싶은 나머지 군대를 제대하고 모아둔 돈을 가지고 실용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기 때문에 스스로 ‘음악천재’인줄 알고 조금만 노력하면 프로뮤지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같이 음악을 공부했던 동기들과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음악이론은 더 많이 알고 있었기에 동기들을 가르쳐주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점점 차이가 벌어지더니, 아무리 노력하고 연습을 해도 악기연주에 있어서 실력이 더디게 느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수업시간을 제외하고 7~12시간을 연습에 매진했지만 점점 실력의 차이를 실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민하고 생각해본 결과 그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잘못된 자세와 기본기에 있었습니다. 혼자 독학으로 악기를 연주했기 때문에 올바른 자세와 기본기가 없었고, 어느 지점부터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잘못된 자세와 기본기로는 더 나은 실력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문제점을 알게 된 이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교습을 해주는 교수에게 부탁을 해서 올바른 자세와 기본기를 갖추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음악을 공부하고 악기를 연주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본을 놓치고 있었기에 더 나은 연주와 실력을 갖출 수 없었습니다.

     

     이 원리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과 예배에 대한 기본기가 없다면 잘못된 줄도 모른 채 습관적으로 변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1]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날 우리는 예배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특히 예배라는 것은 우리의 경험과 기준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예배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기준’으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성경 전체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퍼즐을 맞추듯이 성경전체를 살펴볼 수 있겠지만, 예배의 청사진이라고 불릴 수 있는 성경본문은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약에서 예배의 청사진으로 볼 수 있는 성경은 출애굽기 3-4장의 하나님과 모세와의 만남과 출애굽기에서 나오는 성막의 구조가 대표적입니다. 그외에 선지서들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어땠는지 깊이 있게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을 들 수 있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우리의 상한 심령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에서 예수님은 예배하는 자의 자세에 대해 말씀하실 때,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예배에서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필자가 생각할 때, '하나님에 대한 갈망',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의 임재'

    즉,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갈망과 열정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배에 임하는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시편 40편의 다윗의 고백처럼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이 예배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예배시간에 선포되는 말씀과 예배 이후 보여지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자세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다시금 예배에 대한 자세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예배의 회복과 예배가 신학적으로, 말씀 가운데서 새로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1] 이런 경우를 보통은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지다’라고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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