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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문 글쓰기와 수사학
    인문학과 철학 2014. 9. 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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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글쓰기와 수사학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은 보존되고 전달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기 위해 존재한다. 특히 현대는 지식의 사용목적을 보다 효율적으로 충족시키는 신지식을 필요로 한다. 지식기반사회에서 효용가치를 만들어 내는 핵심인자는 지식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지식에의 적응 능력과 창출 능력이다. 기업을 비롯한 모든 전문 직업시장은 ‘지식’(knowledge) 교육이라기보다 ‘능력’(competence) 교육을 요구하고 있으며 새로운 지식의 창출 및 적응 능력이 기업집단 및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유능력과 의사소통능력 을 배양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글쓰기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다. 글쓰기 교육은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유능력을 배양하고 강화하는 것이고, 자기가 생각한 것을 타인에게 명확히 전달 혹은 설득함으로써 해당 집단 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커뮤니케이션능력을 고양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비판적 사고는 글쓰기 교육과 긴밀하게 상호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글쓰기는 비판적 사고를 전제로 하며 비판적 사고는 글쓰기를 통해 더욱 강화되고 고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능력을 통한 사고력 향상, 사고능력을 통한 표현 능력 향상이라는 언어와 사고의 교호적 상관관계가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


    또한 글쓰기는 학문적 활동을 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능력이다. 학문적 글쓰기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정당화 작업인데, 이것은 자신의 주장을 제시하면서 근거를 함께 제시할 수 없으면 설득적 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문적 활동의 기초능력으로서 수사학이 문제가 된다. 글쓰기는 표현과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는 각 학문의 연구결과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러한 글쓰기는 궁극적으로는 전달을 통해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독자와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바로 이점에서 다시 한 번 설득의 학문인 수사학을 논의할 근거를 갖게 되는 것이다. 특히 논증적 글쓰기를 위한 방법으로 수사학이 갖는 효용성을 모색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직·간접 경험을 통하여 쌓은 지식을 기반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과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사상)을 길러야 하며,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수사학)에 대해 배워야 한다.


    따라서 학문적 글쓰기는 수사학적 추론 또는 문어적 추론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지향해야 한다. 대학에서의 글쓰기 강좌는 철자법, 문법, 구두점, 용법, 그리고 아마도 문체 등에 주로 초점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대학글쓰기 강좌는 메타철학으로서 수사학적 추론이나 논증행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글쓰기를 통하여 합리적으로 능숙한 의사소통을 하는 능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서 문어적 추론을 가르치는 계획이 중요하다.

    이와 같이 학문적 글쓰기가 수사학의 문어적 추론능력을 목적으로 한다면 학문적 글쓰기는 하나의 학문분야로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수사학의 규범

    오늘날 우리가 “수사학”이라는 말을 들을 때 흔히 그 의미가 경멸적이다. 그것은 말이나 문장을 꾸며서 보다 묘하게 아름답게 하는 기술 또는 말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말의 현란한 포장 등과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수사학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전통에서 수사학은 고대의 희랍과 로마에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하나의 학문으로서 이천 년도 넘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구의 저적 전통이 대개 그러하듯이 수사학도 고대 그리스의 정신적 유산에서 비롯된 학문이다. 


    그러나 수사학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조감해 때 그것은 전통과 쇄신의 상호 작용을 통해 전개되어 왔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때문에 수사학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고 상호 모순적이게 나타난다.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거론되었던 20세기 중반은 수사학이 학문적인 합치가 힘든 내포를 지닌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방향성은 문채(figure)의 수사학과 논증의 수사학이다. 이 양자는 서로 양립하기 힘들어 보이며 각각의 진영에 속한 이론가들은 다른 진영의 이론가들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해 버린다. 수사학의 본질에 관련된 이러한 대립은 어느 한 시대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수사학에 대한 거의 모든 시대의 정의들을 양분하고 있다. 


    수사학이 “잘 표현하는 기술”이라면 이것은 표현의 형식적이고 문체론적인 기술을 다룰 뿐 논증적 성격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그것이 “논증하는 기술” 또는 “설득하는 기술”이라면 그것은 잘 말하고 쓰는 기술로서의 수사학을 지양하고 효능, 진실, 유용성 등을 그 미덕으로 추구한다. 이 경우 수사학의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 


    즉 수사학은 그것을 준수하는가의 여부가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관습, 풍속, 법칙, 규범들의 세계 속에서 유통되는 말의 의미와 양상을 따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사학은 서로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한 주장들에 관여하기 때문에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는 무관할 수 없다. 이러한 표현 위주의 수사학과 내용위주의 수사학사이의 대립은 수사학 연구의 중요한 과제로 남겨져 있다.


    이러한 분열된 수사학들 간의 틈새를 메운 수사학의 전체성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수사학이 탄생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수사학의 최초의 모습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수사학은 원래 말을 통한 설득의 기술로서 수사학으로 태어났다. 이것은 서구 고대문화 즉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본질적 요소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즉 설득의 기술로 정의되어온 수사학은 말이 가장 큰 역할을 수행했던 사회의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은 양분법을 지양하고 있다. 우리는 말을 통한 설득의 기술로서의 수사학과 잘 말하고 쓰는 기술로서의 수사학이 상호 배타적이 아니라 통합적이라는 것을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에서 발견할 수 있다.



    Ⅰ.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

    수사학은 기원전 5세기 시라쿠스의 코락스(Corax)에 의해서 기원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기원전 465쯤 시칠리아 섬의 희랍식민지인 사리쿠스에서 일어난 혁명은 수사학의 연구를 위한 촉매제였다. 이 섬의 참주의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정이 확립되자 법정은 상반되는 재산분쟁으로 넘쳐흘렀다. 그것은 땅의 법적인 소유주가 소유주인가 아니면 독재자의 집권 시 땅을 받았던 사람인가하는 것이었다. 이때 시민들은 법정에 사람들을 설복시키기 위해서는 말을 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했다. 그들은 우리가 오늘날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의 편에 서서 말해줄 수 있는 변호사를 고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코락스는 법정에서 말하는 기술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필요를 깨닫고 “수사학의 기법”이라는 글을 저술하였다. 오늘날 이 작품의 사본이 내려오지 않지만 우리는 후대 작가들로부터 개연성의 개념이 그의 수사학적인 체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화자가 사실의 문제에 대해서 절대적인 확실성을 가질 수 없을 때 일반적인 개연성을 가지고 자기주장을 해야 하고 개연적인 결론을 확립해야한다고 믿었다. 또한 그는 개연성을 어느 편이나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서 술을 마시고 운전한 것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았던 어떤 사람이 두 번째로 동일한 잘못을 해서 체포됐다면 우리가 그를 유죄라고 주장하는 것은 개연성으로부터 취해진 논쟁이다. 반대주장도 마찬가지다. 한번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특별히 의심을 사게 될 것이고, 아마도 다시 동일한 상황으로 빠져 들 것이라는 것이다. 코락스는 개연성의 원리에 덧붙여서 연설들의 구성에 대한 형식적인 논의를 처음 시도하였다. 그는 주장하기를 연설은 세 가지 주요한 부분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서론, 논쟁 또는 증명, 그리고 결론이다. 물론 이것은 후대 수사학자들에 의해서 더 정교하게 만들어지게 된다.


    코락스의 제자 인 티시아스(Tisias)는 희랍본토에 코락스의 수사학적인 체계를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테네에 수사학적인 가르침의 도입과 웅변이 가르쳐질 수 있는 기술이라는 새로운 신념은 소피스트(sophist)라고 부르는 수사학 교사들의 집단을 발생하게 하였다. 소포스(sophos)라는 말은 원래 지식 또는 지혜를 의미한다. 그래서 소피스트는 원래 지혜의 교사였다. 그러나 소피스트는 수사학과 더불어 나쁜 평판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소피스트를 거짓되고 또는 기만적인 추론과 결부 짓고 있다.


    그 당시 희랍인들의 소피스트들에 대한 불신은 몇 가지 요인들에서 기인한다. 첫 번째 소피스트는 순회하는 교사였고 아테네인들에게 외국인들이었다. 이러한 외국인 이라는 신분이 아테네인들에게 불신을 만들어 내었다. 또한 그들은 지혜 또는 탁월함을 가르친다고 말하고 전통적으로 희랍인들이 가르쳐질 수 있다고 믿는 덕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의 수고에 대해서 대가를 요구했다. 이런 관행은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피스트적인 교육을 누구나 받을 수 없는 사치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점이 그들에 대한 나쁜 감정을 발생시키게 했다. 더 크게는 소피스트들에게 가해진 지속적인 비난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에 대해서 요지부동하게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의 몇 대화편은 소피스트들을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로 보이게 만들었다. 플라톤의 견해들이 오늘날 많은 부분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 할지라도 수사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압데라의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480-411 B.C.)는 소피스트의 운동의 창시자라고 불린다. 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진술로 우리에게 잘 기억되고 있다. 이 진술은 세계를 접근하는 관점을 인간성의 연구에 두고 있다는 소피스트의 관심을 함의하고 있고, 진리에게 부여한 상대적인 입장을 표방하고 있다.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고 알려질 수도 없는 것으로 각 개별적인 사실 안에서만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급한 만한 가치가 있는 두 번째 소피스트는 고르기아스(Gorgias)로 그는 소피스들과 그들의 수사학적인 유형을 폄하하고 있는 플라톤 대화록의 주제가 되었다. 


    원래 시실리아의 출신인 고르기아스는 아테네에 수사학학교를 세웠고 언어의 시적인 차원을 강조하였다. 그는 시적 환상의 설득 능력을 찬양했다. 그리고 시는 매혹하고, 설득시키고, 마음을 사로잡고, 의견을 변경할 수 있는 마술적, 환상적 매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즉석연설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의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술 이였기 때문이다.


    수사학적인 사유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한 다른 소피스트는 이소크라테스(Isocrates 436-338 B.C)다. 그는 그의 경력을 국가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연설문 작성가로서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음성이 약하고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에 신경과민 증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392년 그는 아테네에 수사학학교를 세우고 수사학을 정치가가 되기 위한 예비 수업 과목이나 자유 교육 과목들 속에서 필수 과목으로 책정하였다. 그는 정치와 수사학이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고, 양 학문은 국가의 일에 참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기술(technique)에 대한 소피스트들의 강조는 수사학이 아직 학문의 영역으로서 공식적인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파라독스하게 수사학의 대표적인 반대자의 한 사람인 플라톤(Platon 427-347 B.C.)이 수사학이 학문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플라톤은 부유한 아테네 사람으로 그의 선생이고 멘토인 소크라테스의 죽음 후에 철학의 변론을 위한 정치의 개입을 거절하였다. 그는 자신의 학교인 아카데미아에서 철학적 사유와 지식 또는 변증을 지지하고 상대적인 지식 또는 의견의 형태들을 비실제적인 것으로 거절하였다. 따라서 그는 소피스트에 의해서 옹호된 상대적인 수사학을 거부한다. 수사학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가 아주 명백하게 드러나는 대화편은 “고르기아스(Gorgias)”와 “파이드로스(Phaedrus)”다. 


    “고르기아스”에서 플라톤은 거짓된 수사학으로부터 참된 수사학을 구별하고, 철학에 기초한 이상적인 수사학으로부터 소피스트에 의해서 실천되고 있는 수사학을 구분한다. 플라톤은 참된 지식을 알지 못한 것에 대해서 수사학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것은 실제로 모든 인간행위의 목적인 “선”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것이 기예라기보다 기술 (techenique)또는 요령이라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수사학은 기술로 하는 활동의 일종은 아니고, 어림잡는 데 능숙하고 용감하며 사람들과 교제하는 재주를 타고난 혼의 활동입니다. 저는 한마디로 그것을 아첨이라고 부르지요. 이 활동에는 여러 다른 부분들이 있으며 요리 술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고르기아스 463).”


    플라톤은 수사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가로, 논리학의 열렬한 옹호자로 각각 등장한다. 플라톤이 수사학을 배척한 이유는, 그의 생각으로는 이 학문이 형태적 요소의 우아함과 공허한 소리 의미체의 매력으로 관중들의 감정을 동요시키는 데만 주력하는 순전히 설득의 형태적 연습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에게 소피스트의 수사학은 학문이 아니라 비도덕적 실용주의에 빠진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수사학이 학문이 아닌 이유는 이것의 영역이 사실임 직한 것, 그럴듯한 것, 개연적인 것에 있기 때문이고, 또한 이것이 이성적인 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사학은 기예가 아니라 숙련이라 불러야 하며, 교육과정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플라톤은 후기 대화편 파이도로스에서 수사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위해서 사랑에 관한 세 가지 연설을 비유로서 사용한다. 첫 번째 두 연설은 현재 아테네에서 자행되고 있는 수사학의 결점을 실증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수사학을 청자를 감동시키지 못하고 악 또는 저급한 동기에 호소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세 번째 연설을 가지고 이상적인 수사학을 명확히 하고 있다. 철학적 수사학은 무엇보다 진리와 인간영혼의 본질인식을 토대로 해야 한다. “ 진리를 알지 못하고 의견을 좇았던 사람은 웃음거리가 되고 전적으로 기예가 아닌 연설의 기술을 산출할 것이다(파이드로스 262).”라는 그의 지적이 이러한 점을 대변해준다. 소피스트의 수사학과 철학적 수사학이 대립되는 것은 서로 간에 근본적인 바탕과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주로 텍스트에 의한 방법을 택하여 개연성에 그 바탕을 두며, 단지 공허한 방식만을 제공한다. 이에 비해 후자는 구전에 의한 방식을 추구하며, 진리에서 출발하여, 영혼을 교육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소피스트의 수사학은 담화의 기예를 목표로 삼으나, 철학적 수사학의 목표에는 사고의 기예연습도 포함하고 있다.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는 최초로 수사학을 사유의 통일된 틀로 체계화한다. 그는 수사학을 의사소통을 위한 학문의 기초로서 평가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실상 플라톤의 사상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수사학은 그의 스승으로부터 상당히 벗어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처음에는 수사학은 기예가 아니라 실용적 재주라는 입장을 취하면서 플라톤과 유시한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스승에 반대되는 의견들을 변호하기 시작하여 수사학은 진정한 학문이라고 선언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철학자는 의견에 바탕을 둔 논증을 피해야 한다고 했으나, 이와는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의 대상인 의견은 진리의 왜곡된 그림자가 아니라 진리의 진정한 형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플라톤의 이론에 따라 “명백한 추론”과 “논리학적 추론”을 구분하면서, 전자는 진리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철학자들이 이 분야를 다루고 , 후자는 의견들의 영역에 속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수사학자들이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류에 잘 훈련된 과학자였다. 이러한 성향은 그의 수사학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플라톤이 한 것처럼 주제에 대한 도덕적인 논의를 시도하기 보다는 수사학의 다양한 양상을 객관적으로 범주화하고, 수사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수사학이란 경우마다 설득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찰하는 지식이다. 이 목표는 다른 어떤 기예도 분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학문들은 단지 특정 대상에 대한 교육과 설득을 담당하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본다면 의학이 건강과 질병을, 기하학이 크기의 성질들을, 산수가 숫자를 다루고, 그 외의 기예와 학문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반면 수사학은 어떤 경우도 다 다르는데 이는 수사학이 일반적으로 모든 설득 수단에 대해 고찰할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사학은 어떤 특정 장르 연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수사학 1335).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초로 수사학에 특성을 부여하고, 이것을 규정짓고, 최종적으로 완성시켰다. 그는 플라톤과 달리 수사학이 논리학과 아주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전자를 후자에 병행하는 학문으로 간주했다. 수사학의 목표는 설득에 있지 않고 어떠한 논증에라도 적합한 설득의 수단을 제공하는데 그 수단은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의 세 가지 요소들로 나누어진다. 설득은 몇 가지 “설복”수단에 의해서 달성되는데 이것을 “증거제시”라 일컫는다. 이것은 기술 내적인 증명과 기술 외적인 증거로 구분된다. 기술 내적 증명에 의한 것이 진정한 수사학적 방법으로, 변론가는 자신의 이성에 의해 그것을 추출하여 언어로 나타낸다. 이것은 객관적일 수도 있고 주관적일 수도 있다. 객관적인 설득방법으로서 증명은 크게 연역법적인 “생략 삼단논법”과 귀납법적인 “예증법”의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략 삼단논법”에 부여한 지위는 수사학의 전통적 틀에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필연성에 의거한 논리적 삼단논법의 논제들에 대해 생략 삼단 논법의 논제들은 거의 대부분 단지 개연적이고 흔하고 바람직한 것들이며, 따라서 수사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Ⅱ. 수사학의 5가지 구성요소

    수사학의 기본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정립된 기본골격에 의존한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한 “수사학”은 일상적이고 사회적인 실천으로서 수사술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려는 최초의 시도였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거의 모든 수사학 개론서들이 반드시 참조해야 할 모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모든 주제에서 그 속에 내포된 설득의 도수(가능성)를 추출해내는 기술,” 혹은 “각 경우마다 설득하기에 적앙한 것을 순이론적으로 발견해내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수사학을 일종의 “기술(techne)”로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설득이 수사학의 근원적인 요소이고 “설득의 수사학”이 고대 그리스 문화의 본질적인 요소라면 설득의 “기술”은 무엇인가 라고 물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식 수사학은 일반적으로 수사학의 기술을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논거발견술(inventio), 논거배열술(dispositio), 표현술(elocutio), 기억술(memoria), 연기술(actio) 즉 변론가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이건, 또는 그가 말하는 담론이 어떠한 장르에 속하건 간에 위의 다섯 가지 기술들을 연속적으로, 그리고 총체적으로 발휘해야만 한다. 이는 변론가가 효과적인 담론을 산출해내기 위해서 수행해야 할 다섯 가지 과제들에 해당한다. 수사학이론의 기본이 되는 과제들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논거발견술

    이는 설득에 필요한 논거들의 수립에 관련된 기술이다. 이것은 변론가 스스로 독창적인 논거들을 “창조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논거들을 재발견하고 재활용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논거발견술은 세 가지 관점, 즉 발화자의 관점, 수신자의 관점, 전언(message)그 자체의 관점에서 복합적으로 검토된다.


    ②논거배열술

    이는 논거들을 어떠한 순서에 의거하여 배열하는 기술을 의미하며 우리가 흔히 초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③ 표현술

    이는 문장의 차원에서 논증들을 언어화하는 작업 또는 그와 관련된 기술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발견되고 배열된 논증이나 논거들의 골격에 살을 붙이고 보다 명료하고 생생하게 구체화시키는 기술을 뜻한다. 우리가 흔히 문제style 또는 문채figure라고 부르는 것은 표현술의 한 양상 또는 기술을 의미한다.


    ④기억

    이상과 같이 작성된 담론을 청중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그 프로그램을 보다 효과적으로 기억해두는 데 필요한 기술을 뜻한다.


    ⑤ 연기술

    이는 변론가에 의한 전반적인 담론의 연출에 관계되며 변론가가 취해야 할 동작이나 목소리, 억양 등에 대한 상세한 기술을 담고 있다.

    고대이후의 수사학의 발전에 자양분 역할을 한 것은 다섯 부분들 가운데 논거발견술, 논거배열술, 표현술의 세 부분들로 압축되며 마지막 두 부분, 즉 기억술과 연기술은 문화의 중심축이 구술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 이동했을 때, 그리고 수사학이 “말해진 담론”이 아니라 “씌여진 작품”을 그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을 때 급속히 희생되고 말았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처음 세부분만을 다룬다.



    1. 논거발견술

    논거발견술은 논증의 창안이 아니라 그에 대한 발견을 의미한다. 이 미 공론화되어 있는 논거들의 저장고에서 논증을 추출하고 또 논증을 이끌어 내서 활성화시키는 기술을 의미한다.


    1) 에토스/로고스/파토스

    논거발견술은 크게 논리적인 측면과 정감적인(또는 심리적인)측면으로 나누어진다. 즉 수사학의 주된 기능을 설득하기라고 본다면 그것은 논증과 감동의 두 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여 수행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수사학의 주된 목표인 설득의 기능에 도달하는 방식들은 합리적인 방식들일 수도 있고 정감적인 방식들일 수도 있다. 설득의 방향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설정할 것인가 아니면 정감적으로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 방향, 즉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으로 구분한다.

    “연설 자체에 의해서 제공되는 셋째 ”

    인용 수사학 1. 1356a


    이 가운데 에토스와 파토스는 정감적인 방행이라면 로고스는 이성적인 방향이다. 정감적인 방향의 첫 번째 방식인 에토스는 청중의 관심을 끌고 신뢰를 획득하기 위해서 변론가가 지녀야 할 성격을 뜻하며 두 번째 방식인 파토스는 청중의 심리적 경향, 욕구, 정서 등을 포괄한다. 마지막으로 설득의 이념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에 속하는 로고스는 논증 또는 논거(argument)의 방식들에 관련된다.

    에토스란 개념은 말하는 사람 혹은 글 쓰는 사람의 인격을 의미하는 동시에 의사소통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관심, 가치관, 습속을 동시에 의미한다.


    “ 화자의 인품은 ” (수사학 1, 1356a)

    청중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하여 변론가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청중의 심리적 상태 및 성향들을 총칭하는 파토스는 감정이나 정서들로 구성되는 정념(passion)들을 지칭한다. 이러한 정념들은 지적인 삶과 대립되는 정서적인 삶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또한 사회적인 삶을 표상하기도 한다. 수사학의 정념은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도 설득의 도구로 고려된다. 청중들의 유형에 연관되어 있는 정념들은 논거들의 선택을 유도하고 결정짓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념을 “ 우리를 변화시킴으로써 우리의 판단에 차이를 만들어 내는 고통과 즐거움을 수반하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화가 난 사람이나 평온한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말을 걸지는 않는 법이라고 한다.

    “ 사랑을 품고 그 정반대이다”(수사학 2 1378a)


    2) 의사소통의 세 가지 요소

    의사소통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와 독창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른 남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 생각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또 아무리 합리적이고 타당한 주장이라 할지라도, 호소력과 설득력을 갖지 못하면 좋은 말하기라고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수사학(Rhetoric)이란 말(언어)을 매개로 사상이나 감정을 주고받는 사람, 즉 화자와 청자, 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의 정도를 높일 수 있도록 말 또는 글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 또는 그 방법을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말 또는 글로 의사소통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요소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말 또는 글을 하거나 쓰는 사람과 듣거나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 평시에 항상 대화나 발표 시에 포함되어 있지만 우리가 하는 말 또는 글에 몰두하다 보면 이것들을 잃어버린다.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우선 말하거나 글 쓰는 이가 있고 이를 들어 주거나 읽어 주는 상대방이 있어야 한다. 또 이들을 연결시켜 주는 텍스트(말/글)가 있다. 이들 세 가지 기본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다. 글/말을 표현하는 이가 없으면 의사소통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며, 청중/독자가 없으면 허공에다 소리 지르는 형태가 될 것이며, 설사 화자/작가와 청중/독자가 있다 할지라도 말/글이 없으면 침묵만 흐를 뿐이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하려면 화자/독자, 시청자/독자, 그리고 말/글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① 화자/작가(speaker/writer)

    수사학 면에서 보면 화자는 세 가지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에토스(Ethos, 인격, 개성), 로고스(Logos, 이성 진리에 다다르는 논리), 그리고 파토스(Pathos, 감정, 감성)다. 이들 중 에토스는 화자에게 가장 중요하다. 화자/작가 인격에 대한 신뢰성이 없으면 이들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한다 하더라도 청중이나 독자는 이를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훌륭한 에토스의 덕목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선의(good will), 박식(good sense), 훌륭한 성품(good character)이다. 글을 쓰면서 독자들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먼저 자신이 정한 주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또한 이 지식을 독자나 타인들을 위해서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하고, 이들에게 해를 까치지 않고 보호하고 있으며 작자는 독자의 편이라는 인식을 줘야한다.


    두 번째는 로고스다. 화자/작가는 자신이 어떤 것을 이야기할 때는 이 방면에 전문가 이상의 지식과 정보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들 폭 넓은 지식과 정보를 논리 정연하게 연결시켜서 가능한 한 진실에 가깝게 말/글로서 펼쳐낼 줄을 알아야 한다. 물론 로고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논리로서 삼단논법, 연역법, 귀납법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세 번째는 파토스다. 이 영역의 극치는 음악이다. 이는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이용하는 찬미가들은 파토스를 잘 이용하는 것이다. 화자/작가도 이를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낯설지만 장례식장에서 적절한 조크나 화자가 시작하기 전에 청중을 웃긴다든가 등 희로애락의 비율을 잘 섞어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지 과로한 파토스의 이용은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감정에 치우쳐 버리면 생각도 나질 않고 판단 자체도 흐려지므로, 이를 훈련을 통해서 통제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요소들은 화자/독자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다. 인격의 신뢰성이 없으면 로고스와 파토스가 아무리 설득력이 있다 하더라도 오디언스(Audience, 시청자/청중/독자)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해박한 지식과 설득력 있는 논리로 자신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리고 약방의 감초처럼 여기저기 감정을 잘 섞어가며 때에 따라선 부드러운 사람, 강한 사람의 형태로 자신을 표출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음악을 훌륭하게 연출하는 것과 같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② 청중/시청자/독자(Audience)

    우리는 일상생활에게 사람들에게 말을 걸 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즉 상대방이 내가 한 말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별반 신경을 쓰면서 말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는 오디언스의 개념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중을 대상으로 말을 하면서 개인에게 하는 것처럼 그들의 성향을 파악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면 설득은 물 건너 간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쓸 경우에는 자신이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말하거나 들을 쓰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오디언스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이 독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있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작가 자신이 자신의 독자는 이럴 것이다 하면 상상하며 만들어낸 경우다. 전자의 경우에는 그들을 만나보고 성향, 나이 등 여러 특징들을 파악하여 실체를 안 경우가 되겠고, 두 번째는 전혀 만난 적이 없는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들이 이럴 것이다”는 가장 아래 글을 쓰는 경우다. 그런데 청중을 알지 못하고 말하거나 글을 쓴다면 불안감은 극치에 다다를 것이다. 따라서 텍스트를 작성하기 전에 자신이 누구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청중/독자에 따라서 메시지를 전달기법, 단어선택 등 설득에 필요한 도구들을 다르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③ 텍스트(Text)

    말과 글은 보통 이성, 감성, 인성의 세 가지 요소가 담겨 여러 자기 형태의 텍스트를 빗어낸다. 텍스트는 글의 목적과 독자의 성향에 따라서 세 가지 요소에 대한 배합을 달리하면서 여러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화자의 입이나 작가의 손을 떠난 메시지는 그 자체가 생명력을 자기고 있다. 말과 글은 그 자체 내에 인격, 논리, 감정이 서려 있다. 화자나 작가의 특성을 고스란히 지나고 있음이다. 말/글속에 인격이 보이게 되고 지식과 정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논리의 방법도 보여준다. 단어의 선택에 따라 감정의 강약도 반영되고 있다. 이들 세 가지 요소의 조율은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히 가감되어야 한다. 결혼식의 주례는 희망과 행복의 감정을 북돋우는 말을 많이 사용하여야 하고, 정치적 연설은 논쟁에 필요한 여러 논리방법을 피리요로 할 것이며, 전문성을 띤 논문은 감정을 제외시킨 단어의 사용이 요구될 것이다.


    이렇게 보듯이 텍스트는 위의 세 가지 요소를 기본으로 다양한 형태로 분류된다. 일차적으로 서술, 설명, 논쟁 등과 이 밖의 여러 형태의 전술, 전략(비교와 대조, 원인과 결과 등)의 형태가 마련되고 이차적으로 이들을 이용한 복잡한 형태의 텍스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저급 형태의 일기 쓰기, 저널 쓰기(일기와 저널의 차이점은 일기는 자신이 독자요, 저널은 제삼자이다), 편지 그리도 독후감 쓰기가 있고 과거 회상하기, 프로필 만들기, 개념 설명하기, 설득하기, 평가하기, 이야기 해설하기, 논문작성하기, 신문/잡지/방속기사 작성하기 등 다양한 고급 형태의 텍스트가 존재한다.



    3) 수사적 논증

    수사학을 논증의 차원으로 환원시키고 논거발견술의 에토스나 파토스를 로고스의 영역으로 축소시키는 것은 수사학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하지만 수사학에서 논증이 차지하는 위치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수사학은 논증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수사학을 구성하고 있는 커다란 부분으로서 논증의 역할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의 세 가지 가운데 논리적으로 추론하고 사유할 수 있는 능력(로고스 또는 논증)을 강조함으로써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으로서 수사학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한다. 그는 소피스트 수사학에 반대하여 논리적 체계가 여전히 수사적 설득의 기술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오늘 날 호소를 한 것뿐이다”(수사학1 135a)


    이렇듯 사사로운 감정들에 대한 호소를 가능한 한 억제하고 논리적 체계에 기대어 설득하는 데 치중하다 보면 우리가 흔히 논거preuve라고 부르는 수단들을 작동시키게 된다. 논거란 어떤 것이 옳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득에 있어 논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론의 여지가 없는 확고부동한 명제나 사실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대안이 가능한 개연성 있는 명제나 논의로 이해했다. 따라서 수사학적 논증은 과학적인 논증이나 변증법적 논증과 비교해 볼 때 매우 특별한 성격을 지닌다. 과학적 논증이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이성에 호소하며 필연적 진리로부터 도출된다면 수사적 논증은 대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대부분의 경우에 받아들여지고 있는 일반적 진리에 근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수사학은 개연성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므로 확실한 근거들에 토대를 두고 있는 증명(demonstration)을 요구하는 과학의 개연성과 “그럴듯함”의 근거 위에서 논증(argumentation)을 펼치는 의사소통의 세계에 있어서 설득적 담론을 구분해야한다.


    설득의 방식들 가운데 앞서 논거들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청중의 분별력과 이성에 호소하며 논증의 골격을 이룬다. 통상적으로 두 가지 종류로 논거들이 구분되는데 첫째는 오직 변론가의 추론하는 능력에 의존하는 기술 내적 논거들이 있고, 둘째는 변론가의 기술과는 무관하게 주어지는 기술 외적 논거들이 있다. 이 가운데 기술내적 논거들은 변론가의 재능과 창조성에의해 제시되는 논거들이기 때문에 그의 발견 “술”이 잘 드러나는 영역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두유형의 논거를 어떻게 구별하고 있는가? 살피자

    “ 논거들 ..... 필요가 있다? 수사학 1 1355 b 35-39

    기술내적 논거는 다시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논거들(로고스) 와 도덕적이고 주관적인 논거들(에토스, 파토스)로 구별된다. 이 가운데 우리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논증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기술내적 논거들을 통한 논증, 그 가운데에도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논거들을 통한 논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에토스와 파토스에 호소하는 도덕적이고 주관적인 논거들을 동원한 설득이나 기술외적 논거들을 이용한 설득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논증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4) 예증법과 수사적 삼단논법

    수사적 논증의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논거들은 예증법과 생략 삼단논법의 두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전자가 귀납적 방식에 속한다면 후자는 연역의 방식에 속한다. 변론가의 연설이나 주장이 얼마큼 신빙성을 갖느냐의 여부는 그가 기술내적 논거들을 어떻게 찾아내고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또한 수사학이 변증법 또는 논리학과 가장 가까워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논거들의 발견을 통해서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의 논리적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 수사학은 변증법의 한 종류이며 변증법과 매우 유사하다”(수사학 1356a 30)라고 진술하고 있다.


    예증법과 생략 삼단 논법으로 대표되는 기술 내적 논거들을 통한 논증의 특성을 밝혀내기 위해 우리가 흔히 추론infrence 라고 부르는 것과의 차이점부터 생각할 필요가 있다. 논리학에서 추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미 알려진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알려지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사유를 진행시켜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추론이 항상 논증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단순한 경험에서부터 추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이라는 이유에서 논증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경험을 벗어난 진정한 지적 작동을 요구하는 추론들이 있는데 이는 크게 귀납과 연역의 방법들로 구분된다.


    귀납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예증법이다. 유사한 것을 알아 볼 수 있는 능력에서 생겨나며 일종의 유우에 의한 논증이라고 할 수 있는 예증법은 설득하고자 하는 것과 유사한 훌륭한 실례들을 찾아내는 기술을 의미한다. 연역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대전제-소전제로부터 결론을 추론해내는 데 있는 삼단논법이다. 그러나 수사학이 관심을 가지는 삼단논법은 생략 삼단 논법 enthymene이다. 이것은 삼단논법을 축소시키는 방법으로 전제들 가운데 하나가 결핍되어 있는 불완전한 삼단논법이다. 생략되어 있는 전제가 충분히 자명한 것이어서 그것을 생략해도 좋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생길 수 있는 생략 삼단 논법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그와는 정반대로 그 전제가 확실하지 않으며 상대방으로부터 이의를 제기당할 수 있기 때문에 감추는 경우에 생겨나는 생략 삼단논법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음 두 논증을 예들어 보자.

    예1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도 죽는다.

    예2 신들조차도 모든 것을 알지 못하니 인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첫 번째 논증은 대전제-소전제-결론이라는 세 가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삼단 논법이다. 즉 두 가지 전제들 가운데 첫 번째 전제(대전제)는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도출된 결론의 논리적 힘이 생겨나는 것이다. 두 번째 예는 불완전한 삼단논법, 즉 생략 삼단논법의 한 예이다. 여기서 “ 인간은 신보다 열등하다”는 대전제가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생략삼단논법에서 두 전제들 가운데 하나 또는 결론을 생략하는 것은 사유의 차원이 아니라 언어적인 표현의 차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생략 삼단논법이 수사적 기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생략 삼단논법이 청중에게 생략된 부분을 복원하게 함으로써 논증의 구성 과정 속에서 완전한 것을 이루어내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청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발함으로써 청중의 설득이라는 원래의 목표에 보다 잘 부합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수사적 삼단 논법은 논리적 삼단 논법처럼 개연성이 전혀 없는 절대적인 진리의 영역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영역 또는 개연성의 영역을 다룬다. 논리적 삼단논법의 대전제-소전제-결론은 예외의 경우가 존재하지 앓는 필연적인 명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살인을 범하지 않았다”는 생략 삼단 논법의 경우 생략되어 있는 대전제나 소전제는 모든 경우에 참일 수 없는 명제이다. 그러기에 그 결론은 언제든지 이의 제기가 가능한 결론이다. 수사적 삼단 논법의 출발점이 되는 전제들은 잘 알려지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근거들이지만 과학적으로 확실한 근거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적으로 확실한 근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수사학은 개연성의 영역에 관계한다.



    2. 논거배열술

    논거배열술은 담론의 구성, 즉 말해야 할 것을 담론의 어느 부분에서 말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과 관련된 기술, 또는 담론에 포함되는 모든 것을 가장 완벽한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기술 등을 뜻한다. 여기서 순서라 함은 서로 다른 명제들의 순서나 다루어진 주제들의 순서부터 진술된 일화들이나 사용된 논거들의 배열에 까지 관여한다. 전통적으로 보면 그것은 전제로부터 출발해서 결론에 도달하는 논증의 순서를 구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논거배열술은 논거발견술의 재료들에 순서를 부여함으로써 각각의 요소들이 특정한 지점에 위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논거배열술에 있어 담론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수는 수사학자들마다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머리말- 진술부-논증부-맺음말로 이어지는 네 가지 부분들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순서는 설득의 주제에 따라 구성하는 부분들을 하나 건너뛰거나 생략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일이다.


    담론의 서두에 해당하는 머리말은 청중의 관심을 끌도록 구성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청중의 관심을 끌기위해서 파토스에 관련하거나 변론가가 행할 설득과 논증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에토스 의 여러 특성들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논리적인 설득의 방식 또한 등한시되어서는 안된다. 다루고자 하는 문제나 증명하고자 하는 주장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청중들에게 이해의 근거를 마련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말 다음에는 사실들을 이야기하거나 제궁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진술부가 위치한다. 변론가는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사실을 진술해야 하므로 여기서는 에토스나 파토스보다는 로고스적 특성들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육하원칙이라고 부르는 것은 진술부의 전형적인 서술방식에 해당한다.


    사실들을 제시하는 데 있는 진술부 다음에는 논거들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논거를 반박하는 논증부가 위치한다. 수사학의 기술 내적 논거들, 즉 예증법과 생략 삼단논법은 바로 이 부분에 위치한다. 자신의 논거를 제시하는 것을 확증confirmation으로 그리고 상대방의 논거를 반박하는 것을 논박refutation으로 나누고 이 둘을 분리시키는 이론가들도 있지만 자신의 논거를 확증하는 것은 항상 상대방의 논거를 반박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부분으로 간주할 수 있다.

    담론은 이른바 맺음말로 끝나게 되는데 여기서는 청중의 정념에 호소하는 방식이 주로 채택된다. 왜냐하면 맺음말에서는 기존의 논의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요약하기도 하지만 청중의 심금을 울림으로써 설득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그 주된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맺음말은 파토스와 로고스가 가장 탁월하게 결합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3. 표현술

    담론의 유형이나 설득해야 할 주제 또는 청중의 성향에 맞추어 논거들이 발견되고, 이러한 논거들이 논증의 틀 속에 편입되어 적절한 배열에 의거하여 조직되면 이제 그것들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남게 된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세 번째 기술이 바로 표현술이다. 표현술은 논거발견술을 통해 제시된 내용에 적절한 말과 as장들을 부여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주로 담론의 형식에 관련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표현술은 담론의 형식과 관련된 기술들을 다루는 다른 분야들 예컨대 시학이나 문체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인용 아리스토텔레스 .... 속하게 된다.(옛날의 수사학 28)


    수사학이 문학 비평의 첫 번째 도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표현술을 구성하고 있는 주개념들인 문체(style)와 문채(figure)를 통해서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표현술의 수사학은 문체론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수사학의 여러 부분들은 구성뿐만 아니라 문체, 즉 전체의 형식들뿐 아니라 하나 또는 몇몇 문장들의 형식에도 관련된다. 표현술은 수사학의 세 번째 부분을 구성하며 오늘날 문체론이라고 부르는 것과 거의 일치한다.”


    설득적 글쓰기를 위해서 수사적 문체와 문채를 논의하게 되는 것은 글쓰기란 논증 행위인 동시에 표현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양자의 비중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 것도 사실이지만 논증 행위가 표현행위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비록 과학적이고 엄밀성을 추주하는 학문적 글쓰기라 하더라도 그것이 언어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이상 수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수사적 문체나 문채가 단순히 말과 글의 장식과 치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논증행위를 추동시키는 사고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논증의 결과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가장 적적한 언어를 구사하려는 표현(elocutio)영역의 부단한 시도이며 설득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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