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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무엇을 쫓는가? - 이준영 전도사 설교
    기독교 /설교 2015. 6. 18.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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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마 12:9-21

    제목 : 우리는 무엇을 쫓는가? 


    우리 성도님들은 즐겨보시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으신가? 저는 예능을 주로 보는 사람입니다. 예전에 제가 봤던 예능 프로그램 내용을 하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요즘도 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중에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가 있습니다. 제가 굉장히 감명깊게 봤던 게스트가 있는데, ‘차인표’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릴 때 나온 ‘차인표’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연기자인데,연기를 잘 못한다고 생각되서 그런것도 있지만, 왠지 이미지가 별로 안좋았습니다. 그런 ‘차인표’씨 편을 보면서 감동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MC가 차인표에게 물어봤습니다. ‘차인표씨, 자원봉사를 비롯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예전부터 그런 일들을 즐겨하셨나요?’ 그러자 차인표씨가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아니요. 저는 자원봉사니 구제 같은 걸 별로 안좋아했습니다. 한창 인기가 있을 때, 10만원이 들어있는 봉투 70개를 준비해서 연말에 봉천동에 있는 임대아파트에 와서 초인종을 누르고 사람이 나오면 ‘차인표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면서 봉투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받는 사람들의 시선이 좀 달라지더라구요. 그래서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돈을 준비해서 줬는데, 나에게 고마워하지 않네?? 내가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하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살다가 신애라씨를 만나 결혼을 했는데, 신애라씨가 워낙 자원봉사니, 구제 같은 것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하지말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 아내가 구제하는 단체의 홍보대사로 외국으로 촬영차 가지로 했는데, 너무 아파서 못가게 된겁니다. 그러다 제 아내가 자기 대신 저보고 거기 홍보대사 촬영을 대신해주면 안되냐고 해서, 못이기는 척 하고는 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까지도 ‘내가 왜 거기를 가야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여러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함께 간 모든 스텝들, 더군다나 구제단체 사장님 조차 이코노미 자리에 앉았는데, 저는 비즈니스 석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해서, 혼자 비즈니스석을 타고 갔습니다. 가서도 선글라스를 끼고서 ‘나는 너희들과 달라’라는 생각을 하고 다녔습니다. 목적지가 차를 타고 하루종일 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중간 쯤 갔을 때, 함께 동행하던 사장님이 저에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차인표씨! 죄송한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선글라스를 벗고 아이들에게 괜찮아!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안아주시면 안될까요?’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는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도착하고 나니깐 사람들이 우리를 맞이하려고 미리 나와있는 것이었습니다. 차에 내려서 사장님 부탁대로 선글라스를 벗고, 한 아이에게 가서 안아주려고 했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괜찮아!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안아주려고 했는데, 그 아이 눈을 보는 순간! 오히려 그 아이가 저에게 ‘괜찮아!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모든 무거운 짐과 아픔들이 오히려 치유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아! 내가 이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에게 내가 도움을 받고 있구나!’ 그때부터 제 이름을 알리지 않고, 오히려 자원봉사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서 스스로 신앙이 좋다고, 믿음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는 관심도 없고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좀더 말하자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위한 날’인 안식일에 관련된 사건입니다. 여러분들은 ‘안식일’에 관련해서 어떤 지식을 가지고 계십니까? 구약성경에 나타난 안식일에 관련된 구절들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31:15)”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26: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신 5:12)”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느 13:17)”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모세의 율법과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시는대로 ‘하나님이 지정하신 하나님의 날’입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날이기에 온전히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안식일에는 ‘일’을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날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출애굽기를 비롯한 성경 곳곳에서는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온전히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준행하지 않아 멸망을 당한 역사가 있습니다. 이런 역사를 비롯해서 나온 것이 바로 ‘경건주의’였던 ‘바리새인파’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더욱 세분화 하여 지킬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신들이 멸망당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서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세분화된 경건주의는 그들이 로마 지배에서 벗어나는 최소한의 신앙적 행보였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물어보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 질문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질문인 것이고, 두번째는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을 ‘일’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 질문에 집중하는지 같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데, 유대인들은 지금 한쪽 손 마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인 예수를 고발하는 것과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일’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율법적 해석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유대인들과는 달랐습니다. 11-12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초로 살펴보면 이 당시 유대인들은 양 한마리를 구하기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시 했던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치료하는 것에 대한 것에는 안식일을 범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양을 구덩이에서 구하는 것은 당연시 했던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율법과 규례에 얽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버린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그 당시 유대인들의 질문은 예수님의 대답처럼 ‘사람’보다 ‘양’이 더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성도님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는 명목하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다른 이들의 아픔을 건드린 적은 없나요?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목하에 다른 사람을 희생하는 것에 대해 당연시 여기고 있지는 않았나요?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에서 ‘선’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날인 ‘안식일’에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곧 안식일의 참된 의미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 같은 결론을 어떻게 추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늘 본문의 앞절을 잠시 살펴보면 됩니다. 

    12장 7절과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두 가지를 근거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번째로 구약성경인 호세아서 6:6절을 근거로 하나님은 제사를 원하지 않고, 자비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자비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예수님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과 동일한 자격을 갖춘 분이라고 스스로 규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안식일’에 대한 규명이 옳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치유사역의 상당수가 ‘안식일’에 행한 일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예수님의 치유사역 가운데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마찰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있는가?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우리의 종교적 열심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가장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더군다나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관심이 없고, 우리의 종교적 열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다면, 결국 한 ‘영혼’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사라지고, ‘사람’을 희생하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는 곳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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